작년 시드니(시드니에서 먹었던 음식 글 링크)에 이어 올해에는 EMBC 학회에 참석차 하와이를 다녀왔다. 지난 1월 겨울에 고생하며 연구해서 쓴 논문이 구두 발표 세션에 채택이 되어 약 12분간 발표와 3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나 자신이 많이 성장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포스트에서 하와이를 다녀오며 즐긴 음식들과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이번이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드니에 이어 네 번째 해외 방문인데, 점점 내가 어떤 음식이 맞고 그렇지 않은지 구분이 잘 된다. 이번 출장에서 확신한 것은 내 입맛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1. 인천공항 비비고에서 산 누룽지같은걸로 된 누드참치 김밥]


출발 전날 온라인 체크인으로 좌석을 선택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출발 네 시간 정도 전에 미리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시간은 오후 7시 50분.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았지만 출출했다. 원래 학교에서 학식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오전에 할 일이 많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을 놓쳤기 때문이다. 공항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비비고에서 먹을 걸 주문했다. 이 음식의 정확한 이름을 잊어버렸다. 누드 참치김밥인데 겉에 누룽지 같은 걸로 감싸져있다. 메뉴에서 맵다는 표시가 되어 있어 내심 기대했는데, 청양고추가 김밥 안에 발자국만 남기고 지나간 건지 전혀 맵지 않았다. 잇몸 건강을 생각해 탕수육도 항상 부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다. 그런 나로서 겉에 누룽지는 먹기 딱딱하고, 이빨 사이 이물감만 줬다. 딱딱한 식감이라 별로였다.




[사진 2.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기내식, 아마 소고기 백반]


최근 기내식 대란으로 뉴스에 오르내린 아시아나를 타고 갔다. 비행기를 예약할 때, 한창 대한항공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대한항공에 돈을 쓰는 게 아깝다고 생각해서 아시아나를 선택했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그냥 거기서 거기인 거 같다. 출발 전 뉴스를 볼 땐, 내가 기내식 없이 가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전에 비행기 타고 다닐 때 정도의 품질로 밥이 나왔다. 기내식 선택할 때마다, 정신 차리고 한식에 가까운 메뉴를 골랐다. 이것도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 소고기 백반,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처음 밥뚜껑을 열고 '아, 이거 그냥 느끼하겠는데, 배고프니 참고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숟가락, 포크와 함께 짜 먹는 고추장이 포장되어 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고추가 들어간 음식이 딱 맞은 것 같다. 고추장을 밥에 뿌려서 먹으니 느끼하다는 느낌 없이 맛났다. 갈 때 총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출발 전 발표 자료 다듬으며 밤을 새우느라 힘들었기에 취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고자 적포도주도 두 잔 부탁하여 마신 후 잠을 자며 갔다.




[사진 3. 달걀, 감자, 소세지로 된 음식]


도착 전 잠에서 깨서 두 번째 기내식을 받았다. 가는 동안 영화를 즐기며 가려고 맥북에 영화도 다운 받아두었다. 그런데 발표 전까지 워낙 긴장되어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발표 자료만 보며 고치고, 대사를 외우곤 하였다. 즐길 시간 없이 긴장되고 피곤한 상태에서 받은 두 번째 기내식. 뚜 둥! 쌀밥이 없었다. 쌀 대신 탄수화물은 감자로 대체하라고 감자를 준 것 같다. 사진의 노란색은 달걀로 된 이름 모를 음식이었다. 아마 달걀찜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피곤함에 절어서 먹은 음식이라 맛없게 먹었던 것 같다.




[사진 4. 와이키키 해변 근처 쇼핑 센터에서 차슈 라멘]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오전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학회장에 가는 지리를 익히고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학회장 근처 와이키키 해변을 걸으며 경치를 구경했다. 바다에는 최근 서핑 대신 격식 없게 즐길 수 있는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와이키키가 파도가 작아 서핑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해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태닝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코카시안들이었다. 아주 옛날엔 하얀 게 미의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피부가 너무 하야면 창백해 보인다(pale)는 점이 단점이라는 인식 때문에 살갗을 태우는 사람이 많은듯하다. 아니면 사우나 문화 대신에 해변에 누워서 습하고 더운 날씨를 즐기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와이키키 해변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쇼핑센터 근처를 돌았다. 뭘 먹을까 하다 시드니에서 라면을 맛나게 먹었던 기억으로 라면집으로 향했다. 와이키키 근처에 일본식 레스토랑만 모여있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차슈 라면을 주문해 먹었다. 국물은 돼지 뼈로 냈는지 돼지국밥 느낌이 났다. 고기는 간이 짭짤하게 되어있어 맛났다. 다만 면발이 국수처럼 가늘어 쫄깃하게 씹을 수 있는 식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사진 5. 김치볶음밥의 탈을 쓴 고추장 볶음밥]


숙소로 돌아가며 팔라마 수퍼(Palama supermarket)라는 한인 마트에서 저녁 식사로 김치볶음밥을 사 왔다. 마트를 들어가 보니 한인들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식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한국 마트에 와있다는 느낌이었다. 마트 안을 돌아다녀 보니 걸린 플래카드엔 40년 된 마트라 써있었다. 한국 식자재, 한국에서 파는 과자, 라면 등이 많았다. 숙소에서 요리할 수 있었다면 식자재 사다 요리를 직접 해 먹었을 것이다. 내 방엔 전자레인지 밖에 없었기에 요리는 포기했다. 뭘 살까 하다가 김치볶음밥과 찹쌀떡을 사 왔다. 하지만 막상 방에 오니 배고프지도 않고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다음 날 아침에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하와이에서 먹을 수 있다니 신이 나서 얼른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었는데…. 돼지고기 대신 햄이 들어가 있고, 김칫국물을 넣어 요리한 게 아닌 고추장을 비벼서 볶은 것 같았다. 맛은 실망했지만, 나는 음식 남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 긁어먹었다. 찹쌀떡은 냉장고에 두고 틈날 때 마다 하루에 한 개씩 빼먹었다.




[사진 6. 푸드 코드 타이음식 코너에서 다양한 선택지]




[사진 7. 타이음식 코너에서 고른 팟타이 볶음밥, 소고기, 그린커리]


첫날 저녁 피곤해서 숙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함께 간 중국 유학생 친구가 값이 싸고 선택지가 많은 푸드 코트를 발견했다며 나를 이리 인도했다. 알라모아나 해변 옆에 있는 알라모아나 센터로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첫날 먹은 라면을 생각하며 여기서도 처음엔 라면을 먹었으나 사발면 맛이 나서 절반 먹고 버렸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이곳으로 왔다. 타이 음식 코너에서 어떤 아줌마랑 아저씨가 이것저것 샘플을 먹어보며 한참동안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 뒤에서 뭘 먹을까 나도 고민했다. 팟타이 볶음밥을 먹고 싶었으나, 앞에서 싹쓸이해가는 바람에 처음엔 먹지 못했다. 그래서 면 종류, 카레, 고기 이렇게 골라서 먹었다. 밥이 없으니 영 별로였다. 이곳을 총 네 번 가서 밥을 먹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갈 때마다 밥, 카레, 고기 세 가지 조합으로 먹었다. 이것저것 골라 먹었는데, 갈 때마다 점점 좋았다. 미국에서 지낼 땐 타이 음식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재스민 쌀로 지은 밥에 향신료 냄새 연한 카레. 거기에 밥을 비벼 먹으면 정말 맛이 난다. 그린 카레에 고수가 씹히는데 둘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맛이 좋았다. 고수 먹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거기에 해당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즐겼다.




[사진 8. 아마 넷째날 저녁에 숙소로 포장해온 새우, 돼직고기, 채소 덮밥]


하와이에서 지내는 남은 기간 밥은 매번 알라모아나 센터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해결했다. 점심에 이미 타이 음식을 먹었기에 다른 것도 시도해보고자 일본식 덮밥을 포장해왔다. 사흘째에 학회에서 이미 발표를 마쳤기에 넷째 날 코코헤드를 다녀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며 덮밥을 먹었다. 점심을 늦게 먹고, 저녁을 일찍 먹으려니 배도 부르고 해서 이건 거의 다 남긴 것 같다. 특히나 덮밥에 이름 모를 채소가 너무 많아 힘들었다. 나는 고기 먹는 사람인데…. 이 음식은 고기엔 간이 연하게 되어 있고, 새우에는 간이 진하게 되어 있었다. 새우를 찌고 뭔가를 묻혀 다시 볶은 것 같았다.




[사진 9. 푸트코트 사발면 맛 나는 라면집에서 차슈 라면 다시 도전]


다섯째 날, 하와이 오아후 섬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다이아몬드 헤드에 올라 섬 동쪽부터 와이키키 해변, 시내를 내려다보고 돌아왔다. 전날부터 숙소에서 왠지 한국식 얼큰한 라면 국물이 당겼기 때문에, 푸드 코트의 라면집으로 다시 향했다. 이전에 스파이시 비프 라면을 주문했다가 사발면 컵라면 느낌을 받고 실망했기에 안전하게 차슈 라면을 주문했다. 이곳은 라면을 주문하면 번호를 불러준다. 그리고 추가 수프와 파, 마늘 칩 같은 고명을 마음껏 퍼갈 수 있게 한다. 첫날 이곳에서 사발면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내가 수프를 너무 많이 추가해서라는 생각으로 마늘 고명을 살짝 더하고, 파를 듬뿍 퍼왔다. 다이아몬드 헤드를 오르느라 힘도 들었고, 전날부터 라면 국물이 당겨서 맛나게 잘 먹었다.




[사진 10. 돌아오는 길 인천 공항 도착 직전 먹은 기내식]


오는 길에도 아시아나를 타고 왔는데, 이번엔 승무원이 최근 기내식 관련 사항에 관해 죄송하다며 사과 방송을 하였다. 잘못은 승무원이 한 게 아닌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기내식을 받아먹었다. 비행기에 타고 처음에 받은 기내식은 비빔밥이었다. 치약같이 짜 먹는 고추장을 비벼서 먹었는데, 여러 채소와 소고기가 들여있는 비빔밥이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도착 직전에 무슨 무슨 닭고기 백반이라길래 이걸 선택했다. 밥을 열어보니 길쭉한 당근이 너무 떡하니 들어있어서 놀랐다. 어릴 적부터 당근은 물론 당근 주스도 혐오하였던 나였기의 당근은 저 중에 두 개만 먹었다. 그리고 닭고기가 순살인 줄 알았는데, 미처 처리 못 한 작은 뼈가 들여있어 입안이 찔릴 뻔했다. 하지만 기민한 혀 놀림으로 뼈를 드리블하였기에 다치진 않았다. 도착 전 입국할 때, 정신 차리고 짐도 잊지 않고 잘 챙기고자 냉수를 받아서 마시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한국에서 밥을 먹을 땐 식당에서 주는 쌀밥 한 공기를 다 먹지 않고 항상 남겨둔다. 하지만 하와이에서는 쌀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기에 체중이 늘어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대부분 하루에 한 끼만 먹었기 때문인지 체중이 줄어있었다. 아마 하루에 두시간 정도씩은 걸어 다닌 것 같은데 그 때문인 듯도 하다.


지난 시드니 방문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아시아 음식, 특히 타이 음식을 주로 먹었다. 재스민 쌀은 정말 마술이라 생각이 든다. 찰기 없는 쌀이 타이 카레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아마 앞으로 해외에 가면 먹는 음식은 항상 이런 종류의 음식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하와이 오하우 섬에서 방문한 명소들과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2018/10/31 - [소소한 일상. 다요리.] - 2018년 여름 하와이 출장과 여행 - 첫날 에서 이어진다.

Posted by 공돌이po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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