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2 - [소소한 일상. 다요리.] - 2018년 여름 하와이 출장과 여행 - 둘째, 셋째날 에 이어서.


셋째날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맥주를 한 두병 마셨더니 일찍잠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혼자 하와이 어디를 가볼까 여행 안내 책자를 뒤졌다. 책자를 살펴보며 가고 싶은 곳 목록을 만들었다. 이날 목표는 코코헤드(Koko head) 를 가는 것이다. 그 방향 그대로 가서 마카푸 등대 (Makapuu lighthouse) 를 보고 오는 걸 목표로 했다. 모두 하와이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버스로 가서 구경하고 돌아오기에 완벽한 경로라고 생각했다. 실은 차를 빌려서 여기저기 다니고 싶었지만, 국제 운전 면허증을 받아오지 않은 바람에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와이에서 차를 빌릴 때 그냥 한국 운전 면허증이 있으면 차를 빌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경찰이 면허증을 보여달라 할 때 국제 운전 면허증이 없으면 잡혀갈 수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서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진1. 하와이 여행 안내 책자를 보고 이동 비용을 토대로 최적 순회 경로를 찾고자 했다.]


나름 아침 일찍 나와서 휴대폰의 구글 지도 어플을 켜고 버스를 기다렸다. 날이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지경인데, 버스 정류장에는 햇빛을 가릴만한 게 없어서 몸이 약간 익는 듯 했다. 작년에 선크림 하나 안바르고 자전거를 타다 얼굴을 까맣게 태웠다. 이번엔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둔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나왔다. 구글 지도 어플이 시키는대로 버스를 타고 맨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에 다행히 에어컨이 빵빵하게 작동해서 시원하게 갔다. 이곳 버스는 카드가 전혀 안되고 결제는 반드시 현금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동전 거스름돈을 안주는 버스도 있었는데, 모든 버스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 종일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1일권으로 버스 표를 사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사진 2. 코코헤드 가는 길 버스 가장 뒤에 앉아]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역시 땅이 넓은 나라라 그런지 아파트 같은 건 잘 안보이고, 전부 주택으로 되어있는 집이다. 이런 곳에서 살려면 아파트 단위로 주민끼리 모여서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할 수 없으니, 옆집과 당연히 친하게 지내야 될 것 같다. 버스를 약 한 시간 정도 타고 가니 내릴 곳이다. 버스가 코코헤드 바로 앞으로 데려다 주지 않으니 걸어야 했다. 중간에 작은 육교를 건너서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길을 따라가면 고속도로 같은 길에 진입할 것만 같아서 이리 저리 걸으며 망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길을 살짝 잃었다. 그러던 와중 어떤 여행객 무리가 코코헤드 방향으로 가는 듯 해서 그들이 가는 길을 뒤따랐다.



[사진 3. 구글 맵으로 코코헤드 근처에서 버스 하차 후 걸었다. 저기 보이는 산은 코코헤드가 아니다.]




[사진 4. 언덕을 따라 제법 많이 걸어야 했다.]




[사진 5. 드디어 코코헤드가 눈으로 보인다.]




[사진 6. 가도가도 아직 코코헤드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안보임]




[사진 7.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사진 8. 코코헤드를 향해 가던 중 사진 찍기 좋은 장소]


코코헤드에 다다르려면 코코헤드 지구 공원에 자가용을 주차하고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버스로 걸어왔기 때문에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언덕을 따라 꽤 많이 걸어야 했다. 언덕을 오르며 코코헤드가 보일 수록 점점 가슴이 설렜다. 산이 누군가 할퀸듯이 파여 있는데, 이런 이국적 자연 경관을 보고 내가 하와이에 와있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코코헤드를 뒤로 하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나온다. 차를 몰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잠시 거기서 사진을 찍고 간다. 사진 8에서 사진 찍은 곳이 그 곳의 길 건너편이다. 나도 가서 사진 한방 찍고 싶었지만, 무단 횡단을 할 수 없어 그냥 멀리서 풍경만 찍어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길 건너서 아무에게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으면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사진 9. 하나우마 베이 말고, 길 건너 진입해야 코코헤드에 닿을 수 있다.]


언덕에 다 오르니 구글 지도가 어디론가 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또 길을 잃고 말았다. 지도대로 따라갔는데, 길 입구에 뭔가 차단기 같은 걸로 막아두었기 때문이다. 지도 어플은 이쪽으로 가라고 하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닌데 어쩌나 싶었다. 마침 정자같은 쉼터에 서 공원 관리원인지 보안관인지 하는 남녀 둘이 담배를 뻑뻑 피고 있길래 길을 물었다. 알고보니 차단기는 자동차 진입을 막으려는 것이고, 그냥 그 옆으로 살짝 돌아서 걸어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사진 10.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차단기가 있는데, 옆으로 돌아서 걸어들어가면 된다.]




[사진 11. 여기서도 제법 걸어가야 한다.]




[사진 12. 코코헤드 입구 근처에 사격장이 있는데, 총소리가 꽤 크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오른쪽 산에서 나는 것인지 산 넘어에서 나는 것인지 '딱! 딱!'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곳에 사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이 내는 소리인걸까? 아니면 미국은 총기소지가 합법이라는데 산에서 누가 총들고 사냥중이나? 불안했다. 하와이 와서 총맞아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알고보니 산 계곡 아래 평지에 사격장이 있었다. 총쏘는 방향이 다행히 내가 걷는 길과 직각 방향이라 안심이 되었다.



[사진 13. 철길로 된 계단을 쭉 따라 오르면 된다.]


길 따라 코코헤드 아래로 오니, 길 따라 조금 더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오솔길 같은 곳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지 헷갈렸다(길을 또 잃었다...). 마침 어떤 커플이 앞서가다가 잠시 멈춰서 몸을 풀고 있길래 방향을 물어보니 오솔길 같은 곳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커플 중 남자가 팔굽혀 펴기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는데, 오르면서 뒤돌아 보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 오르기 전에 힘을 너무 많이 썼나 싶다.


철길로 된 계단 입구에서 등산 전 사진을 하나 남겨야겠다 생각하고 누군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마침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부녀가 보이길래 잠시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했다. 혼자 걸어서 여기 저기 둘러보다 보니 나를 찍을 때는 다른 여행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자신 만만한 포즈를 잡으니 사진 찍어주는 분의 딸이 웃으며 쳐다본다. 코코헤드에 관한 정보를 블로그 등에서 찾아보았는데, 이 때는 30분이면 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아마 그 웃음의 의미는 조금만 올라가보면 힘들어서 지옥을 볼거라는 것일까?



[사진 14. 사진찍는다는 핑계로 오르다 쉬다 반복했다. 산을 오르니 보이는 멋진 풍경]


약 20분 정도 오르니 숨이 가빠왔다. 여름 제주도 출장에서 1100고지 근처에 있는 오름도 가고, 주말에는 종종 친구와 수암봉도 오르고, 광교산, 석성산을 다니며 나름 체력을 다져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체중이 불어서 그런지 힘이 들었다. 올 여름, 등짝에 옷입은 채로 물 부은 채로 자전거도 한 시간씩 탔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르면서 몇 차례 최대 심박치에 도달했던 것 같다. 평소 운동 습관이 높은 심박수를 잘 쓰지도 않고, 높은 심박을 유지하는 일이 적어서 그런지 매우 힘들었다.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 하다. 특히 등에 메고 온 배낭이 매우 불편했다. 가방에 2리터 짜리 물병을 담아왔는데, 오르면서 거의 다 마셔야 했다. 



[사진 15. 바닥이 뻥 뚫린 곳도 있어서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옆에 울타리도 없으니 불안해보인다.]




[사진 16. 바닥 뚫린 구간, 엉거주춤하며 내려가는 사람이 많다.]


이곳은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같기 때문에 체력이 된다면 빠르게 올라서 정상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천천히 내려오며 주변 풍경을 감상해도 된다. 하지만 난 중반 이후 부터 체력이 바닥나서 강제로 휴식을 해야 했다. 강제 휴식과 강제 풍경 감상. 체계적으로 휴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오르며 하나 둘 셋, 수를 세었다. 백 계단 오르면 2분 쉬어야지 했는데, 힘이 빠져서 50 계단 오르면 5분 쉬었던 것 같다. 쉴 때는 철길 계단 옆으로 빠져나와 돌 무더기에 앉아서 쉬었다. 땀으로 샤워를 해가며 말이다.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블로그 같은 걸 보면 다들 쉬운 코스라고 한 듯 한데 반해, 폐가 입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거칠게 숨쉬며 올라가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사진 17. 오르면서 하나우마 베이가 보인다.]




[사진 18. 코코헤드에서 보이는 하나우마 베이. 파도가 너무 아름답다.]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아름다운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곳이 보인다. 바다빛도 아름답고, 이곳은 정말 자연이 만든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했는데, 알고보니 그곳이 하나우마 베이였다. 눈으로도 보며 감상하고, 나중에 돌아와서 감상해야지 하는 마음에 비디오도 많이 찍어왔다. 특히 지금도 파도가 밀려오는 영상을 보면 마음이 그 때로 돌아가고 편해진다. 휴대폰 카메라가 성능이 좋지만 사진과 영상으로는 아무리 해도 이곳에서 느낀 감동의 십분의 일도 담지 못한다.



[사진 19. 내가 이렇게 많이 걸어올라왔다니!]




[사진 20.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 저곳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진 21. 막판에는 쉰 계단 오를 때 마다 몇 분씩 쉬었다.]


오르면서 보면, 아마 이곳에 사는 사람인듯 한데 돌핀팬츠 같은 것에 엉덩이에 코치라고 써놓은 사람이 전화통화도 하면서 엄청 빠르게 오르는게 보였다. 말 그대로 운동 훈련 코치 같았다. 오르면서 숨차 죽겠는데 전화도 하면서 오르다니. 너무 편안하게 통화하면서 오르고 나를 지나쳐 가더니, 얼마후 어느새 정상을 찍었는지, 내려갈 땐 한 계단씩 스쿼트를 하면서 내려갔다. 세상엔 체력 좋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사진 22. 정상에 올라 하나우마 베이쪽을 바라보며]




[사진 23.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파도가 아름답다.]




[사진 24. 코코헤드 정상에서 바라본 분화구]


코코헤드는 오하우 섬 동남쪽에 있어서, 이곳을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동남쪽 경치가 다 보인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은 물론이고, 주변에 조성된 마을도 모두 여유가 있어보인다. 이곳은 뭐든 천천히 흐르는 것 처럼 느꼈다. 여행객들, 현지인들 모두 여유있어 보이는 느낌, 파도도 천천히 밀려오고, 바람도 천천히 불고,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처럼 느꼈다. 내가 마음에 짐이 없어서 일까 자연 풍경이 아름다워서일까 나도 함께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비싼 돈 내고 여행을 가는지 실감했다.


코코헤드 정상에 와보니 분화구 같은게 보였다. 이곳 정상에서 본 분화구 모습은 제주도에서 성산 일출봉에 올랐을 때와 비슷했다. 이곳의 다른 점은 울타리 같은게 없기 때문에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며 몸에서 뽑은 육수는 바람에 말리고, 정신없이 경치를 구경했다. 이렇게 아름답다니. 친구 끼리 온 것 처럼 보이는 무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여 내 모습을 자연 이곳 저곳과 함께 남겼다.



[사진 25. 정상에 오르면 울타리라던지 절벽 조심하라는 문구 같은 건 없다. 알아서 조심]




[사진 26. 제 2차 세계 대전 때 만든 구조물 같은 것이 남아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사진 27. 코코헤드 정상에서 보이는 하와이의 여러 마을]




[사진 28. 어디를 가든 전 세계인이 남긴 낙서는 많다.]


정상에 앉아 숨을 고르는 사람들,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주로 머무는 곳에서 나도 경치를 구경했다. 땀흘리며 올라온 보람이 충분히 느껴지는 곳이다.



[사진 29. 이제 하산. 날이 너무 덥기에 반바지만 입은 사람이 많다.]




[사진 30. 바닥이 뻥 뚫린 곳에서 기어오르거나, 앉아 내려가는 사람들]




[사진 31. 자존심으로 남들 기어가는 곳을 달려 내려갔다.]


이곳은 날씨가 무척 덥기 때문에 남자들은 대부분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닌다. 궁금한 점은 햇볕이 무더워 몸이 통닭구이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 싶었다. 오를 때도 있었지만, 철길 계단 따라가다 보면 밑이 뻥 뚫린 곳이 있다. 사진 31 처럼 밑이 뚫리고, 손을 잡을 만한 울타리도 없는 곳이다. 이게 무서워서 여기 까지 올라오고 더 이상 오르는 걸 포기한 사람도 보았고, 기어올라가고 앉아 내려가는 사람도 보았다. 내가 오를 땐, 신기하게도 백인들만 이걸 무서워했다. 어릴적에 계단이 무서워서 2층도 못올라갔는데,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성큼성큼 걸어내려갔다. 오를 땐 56분 정도 걸렸지만 내려갈 땐 절반도 안걸린 것 같다. 물론 내려갈 땐 가파르고, 바닥에 흙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미끄러워 조심해야만 했다.



[사진 32. 숙소로 돌아가려면 하나우마 베이에서 버스를 탄다.]


하산 후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하나우마 베이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이곳에서 마카푸 등대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약 20분 후에 오기로 했는데, 일찍 온 버스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올라탔다. 다른 관광객들도 버스에 오르길래 따라 올랐다. 알고보니 이 정류장은 동쪽으로 가는 버스와 서쪽으로 가는 버스가 번갈아가며 오는 곳이었다. 숙소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중간에 내렸다. 왜냐면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마카푸 등대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려서 확인해보니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곳이기 때문에 길에서 햇볕을 다 받으며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버스에 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나를 탓하며 숙소 방향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사진 33. 하나우마 베이 근처에 공원이 조성되어있다.]




[사진 34. 예전엔 산호가 무성했을 하나우마 베이의 바닷속 돌들]




[사진 35. 바다빛이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함께온 연구실 동료가 발표 준비를 얼마나 했나 봐주었다. 그리고 함께 잠시 밖에 나가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서 하는 훌라 공연을 보기로 했다.


2018/11/09 - [소소한 일상. 다요리.] - 2018년 여름 하와이 출장과 여행 - 넷째날, 쿠히오 해변 훌라 공연 에 이어짐.


Posted by 공돌이poo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