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1 - [소소한 일상. 다요리.] - 2018년 여름 하와이 출장과 여행 - 첫날 에 이어 둘째날, 셋째날의 기억을 돌아본다. 사진을 다시 보니 발표 전 학회장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던 내 모습, 더위 때문에 힘들어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나 하는 생각 등이 떠오른다.


하와이 도착 둘째날, 어제 학회에서 등록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학회장에 가서 등록하기로 했다. 일어나자 마자 전날 한인마트에서 산 김치 볶음밥을 먹고 갔다. 어디서든 발표를 하게되면 미리 발표장에 가서, 최소한 강단에 미리 서보려 한다. 미리 그 자리에 서서 발표 연습을 하면 더 완벽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려는 이유다. 내 발표는 하와이 컨벤션 센터 3층에서 하기 때문에 1층에서 3층으로 한 번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올라가니 큼지막한 안내판이 발표 자료는 어디에서 올리고, 내가 발표할 장소는 어디인지 가리키고 있다.



[사진 1. 학회장 안내 표지. 내가 발표할 장소는 오른쪽]


발표 자료는 발표자 준비실에서, 세션과 내 이름, 논문 제목을 파일 이름 양식에 맞게 수정하고, 학회 서버에 올리면 된다. 발표자 준비실에 가보니 왠 나이들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가 안내를 맡고 있다. 들어서자 마자 뭔가 도와줄까 물어보지만 긴장해서인지 단호하게 '노'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노 땡큐'라고 해야 싸가지 있어 보였을 텐데 하는 후회가 좀 든다. 약간 당황한 얼굴의 할아버지를 지나서 발표 업로드용 컴퓨터 인터페이스만 살펴보고, 발표 업로드 방법이 담긴 인쇄물만 챙겨 나왔다.




[사진 2. 내 발표장 가는 곳. 옥상이 뚫려 있어 바깥 더운 공기가 들어온다.]


학회장을 둘러보면서 괴로웠던 점은 하와이 컨벤션 센터는 지붕이 뚫려 있다는 거다. 1층은 그나마 발표장 문을 열어두면 거기로부터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나와서 살만하지만 3층은 지붕이 없어서 바깥 공기가 그대로 들어온다. 1997년에 자연과 맞닿자는 철학을 기반으로 뚜껑열린 설계를 했다고 한다. 이걸로 에어컨 설치도 줄이고, 바람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하와이 바람이 그다지 시원하진 않다는 점이다. 하와이 컨벤션 센터 어디를 가도 의자에 앉아 노트북 열고 발표 준비 하기에 편한 곳은 없었다. 나처럼 더위를 잘타는 사람은 이것 때문에 땀구멍만 열린다. 



[사진 3. 다양한 의료 기술 분야 스폰서]




[사진 4. 신호등은 버튼을 눌러야 건널 수 있는 시스템]


학회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하러 역시 알라모아나 센터로 왔다. 이곳은 다양한 쇼핑몰이 모여있는 곳인데, 우리나라에서 아울렛이랑 동일하다. 첫날 내가 피곤해서 자는 동안 함께 간 동료가 찾아둔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했다. 잘 팔린다 싶은 음식들은 대부분 아시아 음식 또는 남미 음식이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주고 받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정말정말 많았다. 



[사진 5. 알라모아나 센터 푸드 코트에서 볼 수 있는 벽면. 서울이라 써있는데, 한국인들 정말 많다.]




[사진 6. 반스앤노블에서 루빅스 큐브, 레인보우식스 원작 소설책을 샀다.]


밥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함께 간 중국인 유학생이 자신이 서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따라가보니 반스앤노블이다. 외국와서 서점에 가면,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만 구할 수 있는 책이 널려 있으니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소설이 꽂힌 책장에서 고르고 고민하고 몇 장을 읽어보고는 중학생 시절 게임방에서 즐겨하던 레인보우식스 원작 소설을 하나 골랐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긴박해보이는 상황 서술이 평소 논문 읽으면서 느낀 영어 읽기와는 다른 감정을 맛볼 수 있어서 선택했다. 그리고 또 하나, 루빅스큐브를 구매했다. 유투브로 가장 쉬운 해법을 이미 익혔기 때문에 손이 심심할 때 마다 숙소에서 열심히 돌려댔다.


하와이 지내는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 한 번, 외출하고 오면 샤워 한 번, 자기 전에 샤워 한 번, 최소 하루에 세 번씩 샤워했다. 아침에 나갔다 점심에 들어오고, 오후에 다시 나갔다 들어오면 네 번은 한 것 같다. 둘째날 샤워 마치고, 방에서 다음날 발표 준비로 만든 대본을 달달달 외웠다. 발표 자료 보고도 하고, 안보고도 하고 ...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지낸 방과 옆 방은 전혀 방음이 안되던데, 다행히 이날 까지 내 옆방에 아무도 안들어와서 그렇지 옆 방에 민폐 끼칠 뻔 했다.



[사진 7.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참여자들이 남긴 꼬리표. 날이 지날 수록 꼬리표가 빽빽해졌다.]


드디어 셋째날, 발표일이다. 학회장 1층에 가서 회사, 연구소에서 온 전시물을 살펴보고, 기념품도 챙기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1층 큰 지도에 내가 왔다고 남겨두고 어제 들렀던 발표자 준비실에서 발표자료를 올렸다. 발표 준비하면서 발표 자료를 약간 수정했기 때문에 버전 3까지 변경해가며 올렸던 것 같다.



[사진 8. 학회 밖 풍경. 구름이 많지만 매우 맑은 날]




[사진 9. 발표 전 학회장 이곳 저곳을 돌며 익숙해지기 위해 애썼다.]




[사진 10. 옥상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발표 대본을 수도 없이 외웠다.]


학회장을 돌며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많이 발표하고, 연구실 세미나 시간에 발표하고, 수업 조교로 들어가서 수업도 하고, 여러번 발표 해보았으니 떨지 말자고 말이다. 그래도 발표 준비를 하면서 가장 준비를 덜 수 있는 방법은 준비가 완벽할 때라는 생각에 옥상 테라스에 있는 탁자에 앉아 발표 대본을 외웠다. 마침 내가 준비하는 탁자에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갔지만 일면식도 없고, 발표 준비에 바빠 전혀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사진 11. 점심시간 발표장에 미리 들러 강단에 익숙해지기 위해 서보았다.]


점심을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었나 기억이 안난다. 식사 후 발표장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발표자의 발표를 들었다. 내 발표는 마지막 차례였는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발표를 약 두 시간 정도 들으며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내내 부담감이 미친듯이 밀려왔다. 왜 내가 학술지가 아니라 학회에 논문을 내서 발표를 하러 왔을까 자책도 하면서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기 전 다른 발표자들의 발표를 들으며 내 발표 자료는 한 없이 초라해보이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잘 만들었을까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사진 12. 발표 준비를 많이 했지만 말을 하면 할 수록 침이 마른 느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번 세션은 나를 제외한 모든 발표자가 유럽과 남미 쪽에서 왔다. 의장은 옥스포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중국계 교수셨다. 발표에 앞서 나를 소개해주신 교수님과 청중들에게 한국식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약 10분 간 발표를 했다. 긴장한 탓에 말하는 내내 목이 타고, 말이 빨라져서 계획보다 약간 이르게 발표를 끝냈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그리고 내 발표 자료만 가장 초라하다는 걱정과 달리 청중들이 마음껏 힘찬 박수 쳐주어 매우 고마웠다. 세션 마지막 순서기도 하고, 발표 후 시간이 남다보니 질문이 여러차례 들어왔는데, 분야 지식이 있는 연구자의 부연설명격 질문도 들어오고, 실험 구현 테크닉에 관한 질문도 들어왔다. 영어 발표에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내 딸리는 듣기 능력으로 질문을 못알아먹으면 어쩌나였는데, 인도 출신이나 유럽 출신 질문자의 억양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약간 불분명할 때는 서두에 '당신의 질문은 ... 인 듯한데' 다시 물어가며 답변을 했다. 학회가 의료 +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구현 기술에 관해 질문이 들어와서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 쉬운 부분이어서 말이다. 구현에 사용한 테크닉을 답변하니 'Clever!'라는 감탄을 날려주어 발표 준비 내내 심적 고생이 한 방에 날아가는 듯 했다. 세션이 끝나고 미국 유학 중인 중국계 박사과정에게 붙들려 1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발표장을 떠났다.



[사진 13. 발표 후 숙소에 돌아와 포춘쿠키를 깠다.]




[사진 14. 근심을 덜어야 미래가 밝아진다.]


숙소로 돌아와서 푸트 코트에서 받은 포춘쿠키를 늦게나마 까보았다. 아마 오늘 하루 종일 긴장해있던 나에게 하는 말일까? 걱정을 적게 해야 밝은 앞날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침대에 베개를 세개를 깔고 기대어 이제 해방이구나 하는 현실을 즐겼다. 숙소로 돌아올 때 월마트에서 사온 하이네켄 병을 깠다. 맥주를 들이키며, 이제 몸 뿐 아니라 마음도 하와이에 왔구나 실감했다. 공항에서 부터 숙소로 오며 틈날 때 마다 모은 여행 안내 책자를 살피며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하와이 어디를 방문할까 하며 살폈다.



[사진 15. 발표도 끝났으니 이곳 저곳에서 모은 여행 안내 책자를 보며 갈 곳을 정했다.]


2018/11/08 - [소소한 일상. 다요리.] - 2018년 여름 하와이 출장과 여행 - 넷째날, 코코헤드 에서 이어짐

Posted by 공돌이po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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