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글쓰기 실력 말하기 실력 모두 형편없어지는 게 느껴져서 책을 읽기로 했다. 최근에 주로 읽는 게 영어로 된 문장이다. 그런데, 이걸 써먹을 일이 우리말을 써먹을 경우보다 훨씬 적다. 그러다 보니 영어 실력도 성에 안 차고 우리말 실력도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책을 고르고 읽는 규칙을 만들어 보았다. 첫째,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책을 보자. 둘째, 읽고 싶은 것을 보자. 셋째, 빠르게 끝내자. 이런 규칙을 만들어 본 이유와 책을 골라 읽은 소감을 남겨본다.

첫째 규칙인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책을 보자는 것은 다음 이유 때문이다. 내가 최근 받아먹는 우리말로 된 글이나 영상 중에, 이건 우리말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니고 외래어도 아닌 별 되지도 않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용어들에 배어들고 있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픈런"이나 "오픈 에어링"같은 용어들. 조정래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문학 하는 사람의 정점은 시인, 그리고 그게 안 되면 소설가, 그마저도 안되면 평론가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말 사용 기술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과 소설가 일 것이다. 이들이 훌륭한 번역서도 내기는 하지만 그 보다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글을 보고 싶었다. 시는 고등학생 때, 필요하기 때문에 억지로 읽었지, 지금은 흥미가 없다. 그래서 소설가가 쓴 책을 고르기로 했다. 그중에 "알쓸신잡"을 보며 알게 된 김영하 작가의 책을 보기로 했다.

둘째 규칙은 읽고 싶은 것을  보자는 것인데, 최대한 내 전문 분야랑 동떨어진 것을 고르자는 추가 규칙도 세웠다. 왜냐면 내 전문 분야에 관한 글은 일하는 시간에 이미 찾아 읽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걸 읽기 시작하면 각 잡고 일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에 몰입 중인 와중에 긴장을 풀고 싶을 때는, 지금 하는 연구랑 약간 거리 있는 주제의 논문이나 기술 블로그에 쓰인 글 같은 걸 "페이퍼스위드코드"나 "링크드인"에 뜨는 소식 중에 골라 본다. 이런 글은 대부분 영어고, 우리말로 쓴 글도 국어전공자가 쓴 글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피하고자 했다. 그러면 위 문단에서 밝힌 대로 소설가의 책을 고르려 하는 데, 내가 무슨 장르의 소설을 좋아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에 읽어보고 싶은 게 생겼지만, 그의 책을 고를 땐 그냥 산문을 읽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른 책이 "여행의 이유"다.

셋째, 빠르게 끝내자는 건 내 단기 기억력과 집중력이 별로라서 그렇기도 하고, 뭔가에 정말 빠르게 질리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불 지폈을 때 얼른 태워서 끝내자는 마음이다. 다행히 "여행의 이유"는 질리지 않고 마음을 끌어당겼다. 책을 읽으면서 구글 어스 지도를 띄우고, 작가가 갔던 행선지도 함께 가보았다. 그리고 구글에서 작가가 인용한 내용도 찾아보고, 또한 오랜만에 국어사전을 켜고 새로운 어휘도 익혔다.

책을 읽으며 나도 내가 갔던 여행지, 그중에 해외 방문지를 구글 어스로 다시 찾아보았다. 지난 대학원 동안 학회에 가면서 머물렀던 호텔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며 나의 여행 태도 변화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초반에는 작가의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방문한 여행지에서 최대한 현지인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했다. 아마 그 당시 꽤 오랜 기간 데이트하던, 한국에 도저히 섞이지 못하던 미국인과 공감을 하며 서서히 미국 사대주의에 빠져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때마침 나의 첫 해외 방문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그다음으로 방문한 포틀랜드에서도 나는 최대한 여행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드니에 방문할 때부터 나는 한국인 여행자가 되고 싶었고, 그다음 하와이에 방문했을 때, 학회장에서 내 연구에 관해 발표하며,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우리말 실력 좀 다시 키우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책을 읽으며 내 여행도 되돌아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빌려서 컴퓨터와 아이패드로 번갈아 가며 보았다. 책을 사서 읽어도 좋겠지만, 경기 사이버도서관 같은 곳에서 무료로 빌려 볼 수도 있다. 

경기 사이버도서관 링크 - https://bit.ly/3w3g6OL

Posted by 공돌이po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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